AI에게 일을 시키다 보면 같은 자리를 도는 때가 온다. 고쳤다고 하는데 안 고쳐지고, 다시 시키면 똑같은 것을 다시 한다.
그럴 때 나는 다른 도구를 켰다.
기억보다 영수증이 정확했다
이 글을 쓰려고 처음에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 그만뒀다. 지난 편을 쓰면서 이미 한 번 데었기 때문이다 — 내 기억 속의 순서와 실제 파일의 순서가 달랐다.
그래서 메일함의 결제 영수증을 열었다. 순서는 이랬다.
ChatGPT Plus $20 → Claude Pro $20 → Cursor Pro $20(한 달) → Claude Max → Kiro → Claude Code 정착.
첫 유료 AI 구독은 ChatGPT Plus였다. 2023년의 일이다. 그 뒤로 3년 동안 나는 이 목록을 순서대로 지나왔다. 지나오는 동안에는 이게 목록인 줄도 몰랐다.
Kiro를 켜던 몇 주
Kiro가 프리뷰로 공개된 것이 2025년 7월 14일이다. 내 멀티 AI 앱의 유일한 커밋이 찍힌 날이 8월 4일이니, 3주 차이다.
그 몇 주가 정확히 겹친다. 클로드가 같은 자리를 돌면 나는 Kiro를 켰고, Kiro가 막히면 다시 돌아왔다.
Kiro를 쓴 이유는 단순했다. 무제한으로 쓰는 기분이 들었고, 실제로 이벤트 가격이었다. 돈 생각을 안 하고 시킬 수 있다는 건 그때의 나에게 꽤 컸다.
다만 코드가 수천 줄로 불어난 시점에는 문제를 못 풀었고, 자주 멈췄다. 여기에는 시점을 붙여둬야 공정하다 — 2025년 여름, 프리뷰 단계의 이야기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수 있다.
나는 갈아탄 게 아니었다
Cursor에 가입한 것은 2025년 6월 15일이다. 최근에 사용 통계를 열어봤다가 좀 놀랐다.
최다 사용 모델 Composer 1 434회
그다음 Auto 252회
Grok Code Fast 1 24회
에이전트 메시지 736회
채팅 136회
탭 완성 2회
내 기억으로는 "커서 자체 모델을 쓰다가 그록으로 갈아탔다"였다. 그런데 통계를 보니 갈아탄 게 아니었다. 같은 편집기 안에서 모델만 바꿔 끼운 것이다. 도구를 옮겨 다녔다고 기억한 구간의 상당 부분이 실은 한 화면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탭 완성 2회.
이 숫자가 나에 대해 말하는 게 있다. 나는 이 도구를 자동완성기로 쓴 적이 거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켜서 만드는 방식으로만 썼다. 개발자가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통계에 그렇게 선명히 찍혀 있을 줄은 몰랐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던 것
지난 편 끝에, 유튜브가 밀던 조합을 따라 해본 적이 있고 그중 하나는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적었다.
내 기억 속의 이름은 "루디온"이었다. 두 번 찾아봤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답은 발음이었다. 루비 온 레일즈(Ruby on Rails)다. 여러 번 입으로 굴리는 사이 "루디온"으로 뭉개져 남아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면, 나는 그때 그것을 프로그래밍 언어인 줄 알았다. 언어는 Ruby고 Rails는 그 위에 얹는 웹 프레임워크다. 이런 걸 틀리게 알고 있었다는 것도 그대로 적어둔다. 이 글의 화자는 개발자가 아니다.
그 유튜버의 주장은 이랬다. Rails는 형식과 관례가 정해져 있어서 AI가 헤맬 여지가 적다. 그래서 결과물이 빨리 나오고, 오류도 금방 찾아낸다.
시점도 맞아떨어진다. Rails는 2025년 10월 22일에 8.1 버전이 나왔다. 오랜만의 큰 업데이트였고, 내 메일함에 Rails 뉴스레터가 도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달이다.
결과는 이랬다. 그때도 세간의 관심을 크게 얻지는 못했다. 한 사람이 밀었을 뿐 흐름이 되지는 않았다. 나도 몇 주 쓰다 접었다.
접은 이유는 성능이 아니었다. 비용이었다.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데, Rails 자체는 오픈소스라 돈이 들지 않는다. 비쌌던 것은 AI 호출 요금 쪽이다. 같은 시기에 Lovable도 함께 쓰고 있었고, 그 청구서가 내 계산과 맞지 않았다.
그러니 "망했다"고 쓰면 틀린 문장이 된다. Rails는 지금도 멀쩡히 잘 돌아간다. 접힌 것은 기술이 아니라 내 시도였다.
그 유튜버가 맞았던 부분
그런데 그 주장에는 진짜 통찰이 하나 들어 있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제약이 강한 판에서는 AI가 덜 헤맨다. 관례가 정해져 있으면 모델이 고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줄고, 경우의 수가 줄면 틀릴 여지도 준다. 이건 맞는 말이었다.
내가 접은 건 그 통찰이 틀려서가 아니라 값이 안 맞아서다. 두 가지는 다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매일 하는 일이 결국 같은 것이라는 걸,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규칙을 적어둔 파일, 기억을 쌓아두는 파일, 정해진 절차와 검증 단계. 전부 모델이 헤맬 여지를 줄이는 장치다.
프레임워크를 사서 얻으려던 것을, 나는 결국 집을 지어서 얻고 있다.
정착했다면서 11월에 570번
한 가지 더 정직하게 적을 게 있다.
나는 Claude Code에 정착했다고 말하고 다니는데, 통계를 보니 그해 11월에 Cursor를 570번 썼다. 그 전 달들이 20~90회대였으니 압도적인 피크다.
그리고 그달의 요금제는 Free였다. 돈을 낸 것은 6월부터 7월 16일까지 한 달치가 전부고, 그 뒤로는 낸 적이 없다.
정착이라는 게 선언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 두 줄이 보여준다. 필요하면 다시 꺼내 썼고, 다만 돈은 안 냈다.
남은 것
도구를 갈아타며 배운 것은 도구 목록이 아니었다.
매번 결론을 내린 기준은 하나였다. 남이 좋다는 걸 실제로 써보고, 내 계산이 안 맞으면 접었다. Kiro도 그랬고 Rails도 그랬다. 유튜브가 밀어서 시작했고, 청구서를 보고 끝냈다.
지금 와서 보면 이 과정이 시간 낭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몇 달 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렇게 갈아타며 만든 결과물은 폴더로 남았다. 다섯 개였고, 전부 이름에 "완성"이 붙어 있었다. 다음 편은 그 폴더들을 열어보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