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나는 복수전공 신청서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쓰고 싶은 것은 컴퓨터공학이었다. 결국 쓰지 못했다.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집이 넉넉하지 않아 졸업하면 바로 취직을 해야 했다. 철학과 대학원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건 더 먼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학을 전공한 내가 컴퓨터공학을 하나 더 붙인다고 정말 취직이 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 길에 들어섰다가 그 세계의 언어를 끝내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것도 같은 두려움의 일부였다.

그래서 가장 무난해 보이는 경제학을 골랐다. 그마저도 잘 따라가지 못해서, 복수전공을 부전공으로 낮춰 졸업했다.

20년이 지나 이걸 적는 이유는, 그때 내가 접은 것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알기 때문이다. 컴퓨터공학을 접었고, 대학원을 접었고, 타협으로 고른 것마저 절반으로 접었다.

그래서 나는 철학을 공부했고, 숫자를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회계와 예산과 보고서의 세계.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잘 맞았다. 그 일을 십수 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다만 가끔, 아주 가끔, 개발자들이 자기 손으로 뭔가를 뚝딱 만들어서 화면에 띄우는 걸 옆에서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저릿했다. 저건 내가 접었던 길의 풍경이구나, 하고.

마흔이 넘어 다시 만난 설렘

작년부터 나는 AI 비서와 함께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였다. 코드를 한 줄도 못 쓰는 내가 뭘 만든다는 건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한국어로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몇 분 뒤에 그게 화면에 떠 있었다. 어설펐다. 버튼이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있었고, 키보드가 입력창을 가렸고, 어딘가는 늘 조금씩 아쉬웠다. 그런데 그게 내가 말한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만 있던 게 세상에 나와 있었다.

이번 주말을 예로 들면 이렇다. 토요일에는 내 폰의 브라우저 앱에 탭 기능을 넣었다. 탭마다 AI와의 대화가 따로 붙어서, 왼쪽 탭에서는 항공권을 알아보게 하고 오른쪽 탭에서는 코드 정리를 시키는 식이다. 일요일 아침에는 7년 동안 쌓아두고 안 열어보던 노트 1,300여 개를 AI의 기억 속으로 옮겼다. 이제 "예전에 내가 정리했던 그거 뭐였지?"라고 물으면 AI가 그 노트를 찾아서 대답한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아침에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를 — AI 조수들을 회사 동료처럼 한 화면에서 만나는 메신저 — 밤이 되기 전에 돌아가는 웹앱으로 만들었다.

주말 이틀 치 이야기다. 복수전공 신청서 앞에 서 있던 나에게 이 문단을 보여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어설픔에 대하여

오해는 말자. 내가 만드는 것들은 어설프다. 상용 서비스 옆에 두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사이드바는 첫날부터 화면을 덮은 채 닫히지 않았고, 버튼은 있는지도 모르게 생겼었다. 나는 그걸 발견할 때마다 AI 비서에게 말한다. "이거 고쳐줘." 그러면 고쳐진다. 다음 날 또 다른 어설픔이 발견되고, 또 고쳐진다.

처음에는 이 어설픔이 부끄러웠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어설픔은 이 방식의 결함이 아니라 특권이다.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쓰는 게 아니라, 어설픈 채로 오늘 쓰고 내일 말 한마디로 고친다. 회사에서 시스템 하나 바꾸려면 품의와 견적과 일정 협의가 몇 달인데, 내 어설픈 물건들은 저녁에 발견한 불편이 다음 날 아침이면 사라져 있다. 완성도는 낮지만 진화 속도는 내가 아는 어떤 조직보다 빠르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설렘은 완성도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 있던 게 지금 화면에 떠 있다"에서 온다. 그 감각은 어설퍼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용기의 정체

요즘 와서 생각한다. 그때의 내가 겁냈던 건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프로그래밍 자체가 아니었다. 그 세계의 언어 — 컴파일 에러, 세미콜론, 알 수 없는 영어 약어들 — 를 통역 없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 막히면 몇 시간이고 혼자 뚫어야 하고,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는 것. 그 고립이 무서웠던 것 같다.

지금 내 옆에는 통역이 있다. 나는 여전히 컴파일 에러를 못 읽는다. 그런데 문제가 안 된다. 내가 하는 일은 코드를 치는 게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뭘 만들지, 왜 만들지, 어디까지 만들고 멈출지, 어떤 어설픔은 참고 어떤 어설픔은 고칠지. 십수 년 회사에서 숫자와 계획을 다루며 단련된 근육이 정확히 여기에 쓰인다. 그러니까 내가 접었던 그 길은, 알고 보니 절반은 이미 걷고 있던 길이었다. 나머지 절반을 AI가 메워준 것뿐이다.

이렇게 쓰면 마치 후회가 청산된 것처럼 들리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그때 그 길로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여전히 가끔 한다. 다만 이제 그 상상에 쓰라림이 없다. 20년 돌아왔지만 도착은 했고, 도착해 보니 예전에 상상하던 것보다 풍경이 좋다.

같은 자리에서 서성이는 분에게

혹시 나처럼, 언젠가 어떤 길 앞에서 용기가 없어 돌아섰던 기억이 있는 분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 길이 코딩이든 글쓰기든 음악이든, 지금은 그 세계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도구들이 정말로 존재한다. 시작이 어설플 것이다. 확실히 어설플 것이다. 그런데 어설픈 채로 굴러가는 내 물건을 처음 보는 순간의 기분은, 그 시절 상상했던 것과 똑같이 좋다.

마흔셋의 주말이 그 시절보다 설렌다. 이 문장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