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나는 나흘 동안 앱을 하나 만들었다.

만들고 싶었던 건 한 문장으로 적을 수 있었다. 질문을 던지면 여러 AI가 각자 답을 내고, 사안에 따라 서로 협의하거나 투표해서 하나의 결론을 내놓는 것. 간단한 질문이면 굳이 다 부를 것 없이 하나가 처리하고.

회의를 시키고 싶었던 셈이다. 사람 회의는 지겨웠는데 AI 회의는 해보고 싶었다.

나는 개발자가 아니다. 회사에서 기획을 하고, 코드는 읽을 줄만 안다. 그런데 그 무렵 코드를 대신 써주는 도구가 막 쓸 만해지기 시작했고, 시키면 뭔가가 만들어졌다. 그게 재미있어서 밤마다 붙어 있었다.

다섯을 한 화면에 모았다

성격이 다른 모델 넷을 API로 엮었다. 거기에 한국어를 잘한다는 모델을 하나 더 붙여 다섯이 됐다.

그리고 어느 밤, 여러 AI의 답이 하나의 말풍선으로 합쳐져 나왔다.

각자 따로 떠들던 것들이 하나의 답으로 정리돼 화면에 찍혔을 때, 나는 "진짜 되는구나" 하고 소리를 냈다. 내가 만든 건 시중의 AI 앱과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었지만, 그 안에서 여럿이 상의하고 있다는 걸 아는 건 나뿐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때만큼 기뻤던 순간은 많지 않다.

써먹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중앙대 MBA를 다니고 있었는데, 재무관리 수업의 어려운 문제를 그대로 붙여넣어 봤다. 돌아온 답은 교수님 자료의 정답과 풀이가 정확히 일치했다. 수식 기호까지 제대로 찍혀 있었다. 내가 만든 물건이 내 숙제를 풀어준 것이다. 그날은 꽤 우쭐했다.

다만 정직하게 적어두면, 다섯이 전부 답한 적은 끝내 없었다. 늘 한둘은 오류를 뱉었다. 나는 그걸 "아직 다듬을 게 남았다"고 생각했지, 설계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그 폴더를 열어보면

1년 반쯤 지나 그 백업을 다시 열어봤다. 폴더가 다섯 개 들어 있다.

이름에 "완성", "COMPLETED", "100%"가 붙어 있다. 문서에는 "세계 최초", "프로덕션 준비 완료" 같은 말이 적혀 있다.

그런데 커밋 기록은 이랬다.

$ git log --format='%h %ad %s' --date=short
dcd9513 2025-08-04 feat: 완전한 멀티AI 오케스트레이터 시스템 구현

$ git rev-list --count HEAD
1

전부 합쳐 한 개다.

파일을 대조해보니 더 이상했다. v2.5는 v2.0과 파일 하나 빼고 똑같았고, v2.1은 오히려 v2.0보다 파일이 적었다. 버전 번호는 올라갔는데 내용은 뒤로 갔던 것이다. 잘 돌아가는 상태가 나오면 폴더를 통째로 복사하고 이름 뒤에 숫자를 붙였다. 나는 그게 버전 관리인 줄 알았다.

공정하게 적자면 코드 자체는 허풍이 아니었다. 문서에 "70개가 넘는 파일, 3만 줄"이라고 적혀 있길래 세어봤더니 실제로 106개 파일에 29,820줄이었다. 투표를 담당하는 코드만 4,132줄이었고, 흉내만 낸 가짜 코드도 아니었다.

거짓말은 분량에 있지 않았다. 상태 판정에 있었다. 완성되지 않은 것을 완성이라 부른 것이 전부였고, 그렇게 부른 사람은 나였다.

넘지 못한 벽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씩은 사소해 보였다.

AI에게 작업을 시키다 보면 같은 자리를 계속 도는 때가 온다. 고쳤다고 하는데 안 고쳐지고, 다시 시키면 똑같은 걸 다시 한다. 그러면 나는 다른 도구를 켰다. 이쪽이 막히면 저쪽, 저쪽이 막히면 이쪽. 도구를 갈아타며 같은 문제를 다시 설명하는 데 시간의 절반이 갔다.

그리고 결국 넘지 못한 벽이 하나 있었다. 전체를 총괄하는 AI를 만들 수 없었다.

내가 원한 건 이랬다. 질문이 들어오면 누군가 먼저 읽고, 이건 혼자 답할 일인지 여럿이 붙을 일인지 판단하고, 붙을 사람을 정해서 넘기는 것. 회사로 치면 팀장이다.

나는 그걸 몇 번이고 설명했다. 설명을 바꿔가며, 예시를 들어가며, 화를 내가며 설명했다. 그런데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게 내 설명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결정적인 게 하나 더 있었다. 노트북을 닫으면 멈췄다.

당연한 일이다. 데스크톱 앱이었으니까. 내가 앉아서 실행해야 돌았고, 내가 일어나면 끝났다. 나는 상주하는 비서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만든 건 내가 켜줘야 켜지는 프로그램이었다. 출근길에 뭔가 떠올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해 여름 이후로 나는 그 프로젝트를 접었다. 용량이 부족해서 버전 폴더를 여러 개 지웠고, 남은 것만 백업해뒀다.

그런데 그 회의가, 지금 매일 아침 열린다

요즘 내 아침은 지하철에서 시작한다. 폰을 열면 밤사이 도착한 보고가 쌓여 있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여러 AI가 각자 분석을 내고, 가중치를 실은 합의를 만들어 하나의 결론을 보내온다. 그해 여름에 내가 그리고 싶었던 바로 그 그림이다. 그때는 한 번도 다섯이 다 답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회의가 매일 자동으로 열린다.

더 신기한 건 따로 있다. 내가 그토록 설명해도 만들어지지 않던 총괄하는 AI가 지금은 있다. 내 지시를 먼저 읽고, 누가 할 일인지 판단해서 넘기고, 결과를 모아 나에게 보고한다.

내가 설명을 더 잘하게 된 게 아니다. 모델이 좋아졌고, 그동안 나온 도구들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됐을 뿐이다.

못 만든 것을 붙잡고 있지 않았더니, 시간이 대신 만들어줬다.

그 사이 흐른 시간은 1년 반 남짓이다. 코드를 대신 써주는 도구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게 2025년 초였고, 내가 그걸 켜본 것도 그 무렵이다. 나는 이 숫자를 적으면서 두 번 세어봤다. 체감으로는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남은 것

그때 쓴 아이디어는 지금도 거의 그대로 쓰고 있다. 그때 짠 가중치 개념은 지금 돌아가는 시스템에도 남아 있다. 심지어 그 앱의 설정 파일에 적힌 이름은 아직도 맨 처음 붙였던 이름 그대로다. 폴더 이름은 세 번 바뀌었는데 그건 안 바뀌었다.

달라진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달라진 건 어디에 두었는가다. 노트북 안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곳에 두었다는 것.

이 연재는 그 1년 반을 되짚는다. 다음 편에서는 그 시절의 도구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것저것 꽤 많이 갈아탔고, 유튜브가 밀어주던 조합을 따라 해본 적도 있다. 그중 하나는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다.